개요|Preface
오연진 작가의 개인전 《젖은 창》은 투명한 창에 빗물이 흘러내려 안과 밖의 시야가 왜곡되는 심상을 담은 하나의 알레고리이다. 작가는 근대에서 동시대로 이어지는 이미지 재현술의 역사적 증거를 과거와 현재의 기술을 통해 구현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 속 대상은 부재하며 이미지의 표면 위에 작가가 붓으로 흘리고 칠한 감광성 액체들의 흔적만이 행위의 역순으로 떠오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실재하는 풍경 혹은 비물질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성되어 온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가 투명한 창문의 양면과 같이 중첩되어 서로를 맞대고 있지만 상호 왜곡되며 비가시화하는 관계성을 암시한다.
〈Plate〉(2025) 연작은 1844년 출간된 윌리엄 폭스 탤벗의 『자연의 연필(The Pencil of Nature)』에 수록된 24개의 도판 중 일부를 전통적인 아날로그 암실 사진술과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를 교차해 재현한 작업이다. 사진 매체가 최초 발명될 당시 출간되었던 『자연의 연필』은, 19세기 근대 기술사 안에서 당대의 뉴미디어였던 사진이 인간의 시각성과 이미지 재현의 영역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사물, 풍경, 인물, 복제 등의 이미지 사례를 통해 증명하고자 한 책이다. 작가는 근대적 이미지 재현술의 증거물을 생성형 AI를 통해 거짓 소환하여 존재한 적 없는 허상의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다시 아날로그 사진술을 기반으로 인화지 위에 현상 및 정착 약품을 수십 번의 붓질로 칠해 구현한다. 물질과 비물질, 존재와 비존재를 가로지르며 열려 있는 오연진의 ‘젖은 창’은 기술의 변화와 함께 누적된 이미지 재현의 역사를 환기시키며, 이미지가 보여주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가늠하게 된 오늘날 인간의 눈이 바라보는 풍경을 드러내고자 한다.
오연진|Yeonjin OH
오연진은 사진의 물리적·개념적 경계를 확장하며, 빛과 감광 재료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미지가 형성되는 구조를 탐구한다. 빛과 물질이 맺는 관계를 기록하거나 조형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을 통해, 사진 이미지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시간성과 공간성을 내포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한다.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이것은 의견이 아니다. 아니, 의견인가?》(OCI미술관, 서울, 2024), 《트위드》(디스위켄드룸, 서울, 2022), 《기억의 조차》(송은 아트스페이스, 서울, 2021), 단체전 《파도가 쉬는 순간》(FIM, 서울, 2025), 《T3 PHOTO ASIA》(도쿄 미드타운 야에스, 도쿄, 2024), 《정착세계》(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2022) 등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