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 4
Kenji Chiga x Yumi Goto

사진은 사기꾼에게 가장 좋은 도구

2024.11.01

A. 사람들은 안심하기 위해 거짓말을 믿는다.

B. 거짓말은 믿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C. 누구나 속을 준비가 되어 있다.

D. 사진은 사기꾼에게 가장 좋은 도구다.

- 『HIJACK GENI』에서 발췌


'오레오레(オレオレ, 나야 나) 사기'를 들어보셨나요? 전화로 상대방을 속여 돈을 가로채는 범죄 수법으로, 2003년 일본에서 처음 대중에게 알려졌는데요. 보통 가족이나 지인을 가장해 금전적인 위기를 꾸며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일본에서만 연간 300억 엔 규모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방식의 전화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죠.


CC NOW 아홉 번째 이야기는 바로 이 '오레오레 사기'에 관한 포토북으로서 2022년 싱가폴 국제 사진 페스티벌에서 베스트 더미북에 선정되었고, 올해 이안북스에서 출간된 『HIJACK GENI』에 관한 인터뷰입니다. 작가인 치가 켄지와 그의 멘토인 고토 유미와의 이야기를 통해, 예술가의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참조해보시길 바랍니다.


from 더레퍼런스 큐레이터 세인


사진은 사기꾼에게 가장 좋은 도구 

치가 켄지(Kenji Chiga)는 빈곤 문제부터 자살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쳐온 사진작가입니다. 그는 ⟨happn⟩(2015), ⟨새, 밤 그리고 그때⟩(2017), ⟨THE SUICIDE BOOM⟩(2019) 등의 작품들을 거쳐오면서, 심층적인 리서치를 바탕으로 복잡한 내러티브를 시각화시키는 데 주력해왔어요. 그는 어느 날 '오레오레 사기' 범인들의 표적 명단에 자신의 어머니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경찰의 연락에 큰 충격을 받는데, 그 경험은 사기와 관련된 사회적 문제를 작품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동기가 됩니다. 켄지는 자신의 얼굴을 변형한 90명의 가상 인물을 만들어내고, 사기범들의 거처를 모사한 환경을 조성하거나 ATM 주변을 배회해보며 그들의 심리를 체험해보려 했어요. 심지어 증거 인멸용으로 쓰이는 수용성 종이로 이미지를 제작해 사기 수법의 흔적까지 재현하면서 말이죠. 이렇게 다양한 실험을 거쳐 완성된 아티스트 북이 바로 『HIJACK GENI』인데요. 흡사 일본의 전화번호부를 연상케 하는 모습의 이 포토북은 치가 켄지가 만든 가상의 인물들로 연출된 일종의 함정이자 가짜 아카이브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사회에 만연한 거짓과 진실의 뒤얽힘을 시각화해 독자를 그 내부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죠.


켄지의 사진과 책에 대한 열정은 출판 기획자 고토 유미(Yumi Goto)와 함께하며 보다 발전합니다. 그녀는 일본 특유의 더미북/포토북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한편, 다양한 사진 워크숍과 전시를 기획해왔는데요. 도쿄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사진 관련 활동을 지원하는 회원제 갤러리 공간인 Reminders Photography Stronghold의 공동 설립자이자 큐레이터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시너지는 그 자체로 독립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포토북을 국제적으로 선보이고 있죠.


지난 여름 이안북스에서 『HIJACK GENI』가 출간되었어요. 이후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소감을 들려주세요.

켄지 KENJIㅣ먼저 이안북스 편집부의 성실한 노력으로 책이 출간될 수 있었어요. 올해 9월에 책 실물을 받고, 감사한 마음이 컸습니다. 출간 이후에 도쿄 Reminders Photography Stronghold(이하 RPS)에서 출판 기념 전시와 T3 PHOTOBOOK MARCHE에서 책을 선보일 기회가 있었어요. 준비했던 도서가 모두 판매되어 정말 기뻤습니다. 2021년 전시로 처음 선보였던 『HIJACK GENI』에 대한 관심이 지금까지 이어져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작업의 주제인 피싱 사기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변하지 않았음을 통감하고 있어요.


출판 기념 전시를 연 RPS는 기획자 고토 유미 씨가 운영하는 공간이죠. 어떤 공간인지 설명해주세요.

유미 YUMIㅣRPS는 2012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사회적 이슈와 문화적 주제를 탐구하는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플랫폼이에요. 포토북을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작품 자체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소통 수단이자 경험으로 간주하죠. 일본 작가들의 작업을 해외로 알리는 역할을 하면서 세계적인 사진작가, 시각예술가들과 협업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포토북 제작 워크숍,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해외 작가들이 일본에서 활동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RPS는 사회에서 간과되는 문제를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목소리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의 작업을 통해 현대 사회에 필요한 대화와 토론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 삼고 있는 공간이에요.


유미 씨와 켄지 씨 두 분은 긴밀한 협업으로 함께 여러 활동을 하시는데요. 함께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켄지 KENJIㅣ저는 사진이나 미술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워크숍을 다니며 공부했어요. 사진작가 요코기 안라오(Alao Yokogi) 씨의 워크숍에 참가했을 때 참가자 중 한 명으로부터 유미 씨의 워크숍을 추천받았어요. 2016년 RPS에서 열린 중국 작가 자오 치안(Zhao Qian) 씨의 워크숍에 참가하면서부터 같이 책을 만들게 되었어요.

유미 YUMIㅣ켄지와는 인도의 교육 문제를 다룬 프로젝트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기억해요. 일반적으로 인도라는 나라를 시각적으로 풍부하고 그림 같이 아름답기만 한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켄지는 그 이면에 숨겨진 더 깊은 사회적 메시지를 포착해냈어요. 사회의 문제점을 똑바로 직시하면서 메시지를 도출해 그것을 사려 깊게 전달하는 매력적인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죠.


사회 문제를 직시하면서도 사려 깊은 작가라는 말에 무척 공감이 가네요. 켄지 씨는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는 건드릴 수 없는 사회 문제를 주제로 작업해온 것 같아요. 일본의 어두운 사회 문제를 주로 다루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켄지 KENJIㅣ일본은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사회의 어두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거운 시간을 깨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언급을 꺼리죠. 일본에 코미디 프로그램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개그나 유머는 힘든 상황을 견디는 것에 도움이 돼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만 삶이 흘러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들춰내야 하는 것을 덮어두고 살아온 결과가 지금의 일본 사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가끔은 쓴 약을 먹어야 할 때가 있잖아요. 제게 예술은 그런 약을 포장하는 캡슐과도 같아요. 사회적 문제를 주제 삼은 작업은 개인적 관심에서 비롯되었지만, 작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유미 씨는 일본의 사회, 문화, 정치적 문제를 해외에 소개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진작가로 켄지 씨를 꼽았죠.

유미 YUMIㅣ네덜란드의 한 사진 페스티벌로부터 일본 작가들을 소개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이 기회를 통해 현대 일본 사회가 당면한 문제 중 심각할 정도로 높은 자살률 문제를 다루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작업을 통해 인식을 환기하거나 생각할 거리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늘 고민해왔거든요. 그때 켄지가 떠올라 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켄지는 철저한 리서치로 작업을 시작해요. 프로젝트의 주제가 정해지면 80%는 리서치에 시간을 할애하죠. 가령 자살을 주제로 진행한 『THE SUICIDE BOOM』의 경우, 그는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중대한 자살 사건의 현장을 방문하고 그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어요. 저는 켄지가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들이 얻을 수 없는 정보를 파헤쳐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데 능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헌신적인 접근 방식에는 말을 뛰어넘어 시각적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죠.


이번 신간 『HIJACK GENI』는 피싱 범죄인 '오레오레 사기'를 소재로 한 작업이에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유미 YUMIㅣ'오레오레 사기', 즉 피싱 범죄는 수년 동안 일본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이에요. 저는 이 사건이 켄지가 일본 사회의 중요한 측면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THE SUICIDE BOOM』에 이어 또 다시 프로젝트를 제안했어요.

켄지 KENJIㅣ일본은 치안이 매우 좋은 나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범죄는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나쁜 사람이란 자기 근처에 있지도 않을 뿐더러 죄를 짓고 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어느 날 경찰로부터 한 사기 집단이 소유하고 있는 표적 리스트에 제 어머니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어요. 당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주변에서 '사기를 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농담이 들릴 정도로 궁지에 몰린 사회 상황도 동시에 목격했죠. 그때 비로소 범죄가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쁜 사람'은 누구인가요? 또, '빼앗아도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계속 늘어나는 범죄에는 범죄가 필요해지는 배경이 있고, 거기에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유미 씨의 제안이 있었군요. 켄지 씨가 '오레오레 사기'를 작업으로 풀어낸 방식에 대한 유미 씨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유미 YUMIㅣ'오레오레 사기' 프로젝트를 통해 켄지가 주제에 집요할 정도로 파고드는 저력과 주제를 풀어나가는 독특한 방식에 놀랐어요. 켄지의 리서치는 데이터 수집에만 머물지 않고, 핵심적인 장소를 찾아가 발견한 정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의 구조에 엮어낼 수 있도록 이루어져요. 그렇게 만들어진 켄지의 작품은 단순히 어떤 범죄의 유형에 대한 기록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사회 문제에 대한 예리한 비평이라 할 수 있죠. 구체적인 리서치를 통해 사기를 둘러싼 사회 구조와 요인을 탐구하고,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의 관점에서 복잡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HIJACK GENI』는 피싱 범죄라는 현실에 관한 포토북이면서도, 실제 피해자나 가해자를 직접 다루기보다는 다큐멘터리를 '가장하는' 듯한 방식을 취하고 있어요. 그런 접근을 시도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켄지 KENJIㅣ그 특수한 사기 범죄의 구조를 작가로서 작품 제작에 반영하기로 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흔히 이 범죄로 피해를 당한 사람을 보고 '왜 속았지? 너무 뻔한 거짓말이잖아'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자신이 피해를 당했을 때도 '왜 속았을까'라고 자책하죠. 하지만 실제 사기꾼들이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만들어내는 상황 설정은 정말 교묘해서, 거짓말 자체가 진부하더라도 눈치채지 못하고 속아 넘어가게 돼요. 그런 부분들을 책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사기의 속성을 작업의 어법으로 가져와 사용한 것이군요. 『HIJACK GENI』의 제목에도 숨은 뜻이 있을까요?

유미 YUMIㅣ최종 제목으로 결정되기 전에 여러 번 변주가 있었어요. 다양한 제목과 시각적 형식으로 여러 전시에 출품했었죠. 켄지가 말한 것처럼 피싱의 파악하기 어려운 속성을 전시에도 동일하게 적용한 거예요. "HIJACK GENI"는 켄지 본인 이름의 영문 표기(Kenji Chiga)에 쓰인 알파벳을 재조합해서 만든 제목이에요. 켄지다운 세심한 표현 방법이죠. 의도적이고 필연적인 단계를 거쳐 구축된 창작 과정의 긴 여정 끝에 얻은, 보상과도 같은 타이틀이라 생각해요.


 『HIJACK GENI』에는 피싱에 연루된 90인의 가상 인물이 등장하죠. 이들의 초상 이미지는 전부 켄지 씨 본인의 얼굴을 변조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이유와 자세한 제작 방식이 궁금합니다.

켄지 KENJIㅣ실제 피해자와 가해자를 인터뷰했지만, 그들의 얼굴을 촬영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인지 의문이 들었어요. 사진작가의 자아로서는 촬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긴 했죠. 하지만 '피해자'나 '가해자'라는 수식과 함께 누군가의 모습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 얼굴을 바탕으로 만든 가상의 초상 이미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제게 내재된 피해자로서의 모습과 가해자로서의 모습을 표현하는 동시에, 다양한 캐릭터로의 변장이라는 의미에서는 피싱 범죄 가해자들의 방법을 모방한 것이기도 해요. 제작 방식의 경우, 포토샵 같은 툴을 이용해 완벽한 거짓말을 만드는 것보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앱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거짓말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FaceApp이라는 앱에 먼저 제 얼굴 사진을 넣고 성별을 여성, 나이를 노년층으로 바꾼 이후에 완성된 초상 사진을 저장하고, 이를 다시 앱에 넣어 젊은 남성으로 바꾸는 방식을 반복적으로 적용해 90개의 초상을 만들었어요.


유미 씨가 이야기한 것처럼, 켄지 씨의 특정 집단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고민이 느껴지는 부분이네요. 작업 매체로 책을 고른 이유도 궁금합니다. 전화 송금 사기를 다룬 『HIJACK GENI』는 전화번호부의 형태를, 자살 사건 보도를 다룬 『THE SUICIDE BOOM』은 신문의 형태를 차용한 점이 돋보였어요. 사진을 책으로 엮어낼 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켄지 KENJIㅣ제게 있어 책은 작품을 제작한 뒤 최종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제작에 착수한 초기부터 이후 제작을 어떻게 진행할지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매번 만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매체로 책을 선택했다기보다는 필연에 가까웠죠. 사진은 주로 평면에 인쇄가 되고 대부분의 관객은 본다는 점에서만 작업을 경험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책은 촉감, 무게, 형태, 냄새 등의 요소가 더해져 매체로서의 존재감이 감상을 돕기도 하죠. 저는 그런 경험들이 작품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어요. 그래서 책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제 안에서 '이 작품은 이런 작품이다'라고 할 때의 감각적인 것이 책에서도 느껴지는지의 여부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더미북으로 소량 만들었던 책이 출판사에서 양산되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더미북으로 제작할 때와, 출판사 이안북스에서 제작할 때 어떤 점이 달랐을까요? 출판 과정에서 특별히 더 신경 쓰거나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이 있었나요?

켄지 KENJIㅣ더미북일 때는 집착에 가까울 만큼 디테일한 요소들을 담을 수 있지만, 대량 생산을 고려할 땐 포기해야 하는 지점들이 생기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는 부분과 정말 중요한 포인트가 무엇인지 좁혀나가야 했어요. 이안북스에서 그런 부분을 잘 이해해줘서 큰 도움이 됐어요. 처음부터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책의 두꺼운 두께를 재현하는 것과 책등을 제외한 3면의 종이를 노란색으로 칠하는 것이었어요. 크기가 조금 작아졌지만, 그래도 더미북처럼 전화번호부를 연상할 수 있게 제작했어요.


지난 9월, 『HIJACK GENI』의 출판 기념 전시를 RPS에서 진행했죠. 한국 인쇄소에서 사용한 인쇄판을 일본으로 가져가 전시한 걸 보았어요. 출판 기념 전시의 구성이 책 내용과 어떤 식으로 연계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켄지 KENJIㅣ'오레오레 사기'는 매뉴얼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그룹이 그것을 따라 모방 범죄를 지속해 왔어요. 원본과 복사본, 상층과 하층,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 이런 요소들을 이번 인쇄 과정에 빗대어 생각해보았을 때 한 장의 인쇄판에서 500부의 사본이 만들어진다는 점이 사기가 일어나는 구조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책과 인쇄판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죠. 또 층위의 차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 등을 생각하면서 판에 묻은 잉크를 세정액으로 일부 씻어낸 것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유미 YUMIㅣ『HIJACK GENI』는 시각적 경험 뿐만 아니라 창작 과정과 제작 시행착오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켄지의 창작은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니라 작가, 편집자, 출판사 간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 형성돼요. RPS에서 진행한 전시에서는 실제로 책을 만드는 데 동원된 인쇄판, 테스트 인쇄물, 출판사와 주고받은 문서 등의 요소를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특별히 『HIJACK GENI』는 아티스트 북에서 상업 출판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도 의미를 두었어요. 이를 통해 완성된 결과물을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수정을 거듭했는지를 공유하면서, 관객들에게 포토북 『HIJACK GENI』의 최종 버전을 소장하는 것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고 더 깊은 이해를 돕는 거죠.


인터뷰도 작업의 이해를 돕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두 분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새롭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있을까요?

켄지 KENJIㅣ여러 가지를 연구하고 있는데 그중 두 가지를 소개하자면, 하나는 ‘기억’에 관한 것이에요. 과거에 경험했다고 기억하는 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인 경우가 있죠. 인터넷 경매로 구한 옛날 일기를 쓴 사람을 설명에 따라 찾아냈는데, 본인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제 이름을 몇 번이나 말해도 금방 잊어버리는 상황이 있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잊어버린다는 것, 기억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허구, 우리가 무엇을 잊어버리고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예전부터 촬영 모델이 되어준 인도 친구와 관련된 것이에요 그 친구가 자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연극을 통해 정치적이거나 교육적인 메시지를 소셜 미디어에 올리고 있는데, 공동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해외 레지던시에도 지원하고 싶고요.

유미 YUMIㅣ앞으로 켄지가 사회적 이슈를 어떻게 다루고 이를 작품으로 풀어낼지 기대가 돼요. 간과된 문제를 예술을 통해 조명하고 이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는 힘을 가진 아티스트니까요. 켄지와 지난 두 번의 협업을 통해 사회 문제에 접근하고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도전을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지속적인 협업을 통해 사회에 필요한 대화 주제를 던지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길 기대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2025년 봄에 RPS 교토 페이퍼롤즈에서 『HIJACK GENI』를 주제로 한 전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전시는 도쿄 전시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과 접근 방식을 제시하면서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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