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의 푸른 숲, 서점을 위한 음악을 찾아서
2024.08.07
"1년 동안 츠타야 서점에 재생할 음악을 만듭니다. 모두 츠타야를 위해 새로 쓰는 곡이에요." - 하루카 나카무라
CD의 1면은 첼리스트로, 2면은 콘텐츠 마케터로 일상을 반복 재생 중인 선민입니다. 매주 아침, 저는 책이 가득한 더레퍼런스로 출근해요. 책과 전시로 채워진 이곳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음악을 트는 일이죠. 얼마 전 ‘서점에서 듣기 좋은 음악이 따로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평소 좋아하던 뮤지션 하루카 나카무라 SNS에서 신보 소식을 접하게 되었어요. 츠타야 서점을 위해 1년간 사진작가 린코 가와우치와 함께 협업한다는 기사였죠. 그들의 협업도 반갑지만, 서점을 위한 헌정곡이 발매된다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뮤지션 하루카 나카무라와 사진작가 린코 가와우치의 음악 프로젝트 「Aoimori」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죠. 두 명의 아티스트가 음악과 사진으로 그려낸 푸른 숲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from 콘텐츠 마케터 선민
도심 속의 푸른 숲, 서점을 위한 음악을 찾아서
하루카 나카무라(Haruka Nakamura)는 일본에서 피아니스트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어요. 클래식 음악과 자연의 소리, 현대적인 사운드 기법을 결합해서 독보적인 음악 스타일을 구축해 왔죠. 장르의 한계를 두지 않는 뮤지션으로 다양한 협업을 추구해요. 최근에는 일본 츠타야 서점을 위한 음악 프로젝트 「Aoimori」을 통해 단단한 팬층을 쌓아가고 있어요.
린코 가와우치(Rinko Kawauchi)는 일상의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하는데 정말 탁월한 작가예요. 잔잔한 파동을 만들어 내는 그녀만의 시선은 세대를 넘어 어떤 정서적 교감을 만들죠. 일본 동시대 여성 사진가로 알려졌지만, 린코의 사진집은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일 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츠타야 서점을 위한 음악 「Aoimori」가 벌써 세 번째 음원으로 발매되었는데요. 프로젝트 소개를 부탁드려요.
하루카 도쿄에서 줄곧 지내다가 3년 전쯤 일본의 최북단인 홋카이도로 이사를 왔어요. 고향 인근으로 오니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제 기억 속에 있던 소리가 다시 맴돌기 시작했죠. 자연의 소리 같은 것들이요. 음원이 이름인 「Aoimori」는 푸른 靑(청) 숲 森(림)이라는 뜻으로, 제 고향 아오이모리현(青森県)에서 가져왔어요. 츠타야 다이칸야마 점은 예전부터 제 창작 활동에 든든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곳이에요. 기쁜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기억에 새겨진 소리에서 영감을 받았군요. 음반 표지 사진이 ‘기억의 소리’를 잘 표현해 준 것 같은데요.
하루카 | 맞아요. 린코 가와우치의 사진이죠. 앨범 사진으로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린코 씨의 오랜 팬이기도 해요. 도쿄에서 지낼 때 그녀의 사진집을 사서 집에 전시해 두곤 했죠. (웃음) 우연한 계기로 서로가 같은 강을 보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후로 지금까지 여러 협업을 하고 있어요.
린코 가와우치의 사진을 애정하는 독자는 한국에도 무척 많아요. 먼저 린코 씨, 최근 전시 소식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린코 | 지난 4월에 ⟪Cui Cui + as it is⟫라는 주제로 일본 사진 페스티벌 교토그라피에서 개인전을 가졌어요. 우선 <Cui Cui>는 2005년에 FOIL 출판사에서 처음 선보인 시리즈예요. 13년간의 일상을 꾸준히 기록하며 추억한 가족사진이기도 하죠. 설날에 모인 가족들, 오빠의 결혼식, 할아버지의 죽음, 새 생명의 탄생을 그린 작업이에요. 세월이 흘러 저도 결혼을 하고 <as it is>란 제목으로 3살이 된 딸의 성장 과정을 사진으로 꾸준히 담고 있죠.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공존하는 탄생과 죽음의 순환, 그리고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전시라고 할 수 있어요. 두 시리즈는 현재도 이어가고 있어요.
여담이지만 더레퍼런스 서점에서 린코 씨의 책은 베스트셀러이기도 해요. 디지털 시대에 사진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을 꾸준히 지속하는 이유가 있나요?
린코 | 저에게 사진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표현 수단이에요. 일상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매체로써 책과의 합(合)도 좋아하고요. 현재는 2022-23년에 제 고향인 도쿄 시가에서 전시한 ⟪M/E⟫의 사진집을 준비하고 있어요. 전시 중에 하루카 씨와 협업해서 공연도 했고요. 책은 프랑스 그리고 일본 출판사와 공동 출판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기대해 주세요. (웃음)
기록하는 매체로서 책과의 조화가 좋다는 말에 공감해요. 전시와 책이 가지고 있는 서로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린코 | 전시장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것과 책이라는 형태로 경험하는 건 별개라고 생각해요. 어느 편이 좋고 나쁘다고 말하기도 어렵고요. 느낌이 너무 다르니까요. 다만, 책을 펴고 책장을 넘기는 행위는 좀 더 사적인 경험이 될 수 있어요. 사진을 책으로 만나는 순간의 매력이랄까요?
사적인 경험, 정말 적절한 표현 같아요. 하루카 씨는 뮤지션 입장에서 서점을 위한 이상적인 음악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하루카 | 서점 안에서 주장이 강한 음악은 몰입을 깨뜨리는 방해 요소라고 생각해요. 도시는 큰 소리로 넘쳐나잖아요. 서점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바깥 소음과 단절된 고요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원하죠. 음과 음 사이에 사유의 공간을 확보해 주는 ‘여백’이 중요해요. 저는 대체로 악보의 자간과 행간 사이에 공백을 만들어 자연에서 빌려 온 소리를 심습니다. 자연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이야기’를 흡수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Aoimori」도 그런 점을 신경 써서 음의 간격을 배치했어요. 음악이 바뀐 이후로 도서관 같다는 후기를 들었는데, 너무 정적이라 구매율이 떨어졌다면(!) 츠타야에 심심한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네요. (웃음)
린코 | 저도 하루카 씨의 말에 공감해요. 사진집의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여백이 필요하거든요. 누군가 책을 들고 펼쳤을 때 속지 사이사이 사진들과 교감하게끔 음악이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더 깊은 소통의 기회가 열리겠죠. 몰입을 돕는다는 건 음악이 공간의 첫인상과 장면의 무드를 조성해 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간 하루카 씨가 발매한 앨범을 보면 사진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요. 사진이 본인의 음악을 잘 표현하는 매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루카 | 저는 어릴 적부터 풍경을 보면 음악이 들리곤 했어요. 고향 아오이모리(青森の)의 아름다운 노을에서 멜로디가 들렸고 그걸 피아노로 치곤 했죠. 거듭하다 보니 저만의 음악을 만드는 방법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작업의 테마가 생겼어요. ‘풍경이 그려지는 음악’. 그게 제 음악의 키워드예요. 사진으로 제작된 앨범 커버가 많은 이유는 만드는 이유는 선율이 들린 풍경을 사진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이에요. 「Twilight」라는 앨범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풍경이고, 사진 속에 강이 바로 저와 린코 씨가 함께 마주하던 거리의 강이에요.
츠타야도 처음 시작은 CD와 DVD를 대여해 주는 공간이었지만,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주를 이룬 이후부터는 시장이 많이 축소되었어요. 한국은 스트리밍, 플레이리스트라는 음악 감상 문화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일본의 음악 감상 문화는 어떤가요?
하루카 |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일본 역시 음악 감상의 형태가 빠른 속도로 변화했어요. 듣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게 당연해요. 중요한 건 우리는 항상 음악을 듣고, 노래 부르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거죠. 음악의 가치는 변하지 않아요. 본질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청음(聽音)의 수단이 바뀌는 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번 프로젝트는 CD와 LP로도 제작이 되었어요. 요즘 일본의 음반 시장은 어떤가요?
하루카 |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CD나 LP 재발매 문의가 자주 있어요. 의미 있는 음악을 소중하게 남겨두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겠죠. 제가 린코 씨의 사진 책을 집에 전시해 두고 지냈던 것처럼, 물건을 오랫동안 소중히 다루고 남겨두는 일본 특유의 정서가 음반 시장을 지탱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종종 제 앨범이 어떤 공간에 전시된 것을 볼 때마다 음악이 공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조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Still Life」라는 앨범은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어요.
물성이 느껴지는 책이나 음반은 촉각을 사용해서 사물과 교감할 때 비로소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독자분들이 방문해 볼 만한 일본의 예술 서점이나 음반 샵이 있을까요?
린코 | 도쿄에는 좋은 예술 서점들이 매우 많아요. 그중에서도 POST와 BOOK AND SONS는 꼭 가보세요. 북 큐레이션이 훌륭하거든요. 물론 제 사진집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웃음)
하루카 | 저는 비와 휴일을 추천해요. 비 오는 날이나 휴일에 어울릴 만한 음반들을 소개하는 곳이에요. 특별한 점이 있다면,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앨범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죠. 개점 초부터 제 작업을 지원한 공간으로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해요. 그 공간을 위해서 「CALL」이라는 곡도 만들었고요. 일본에 오시면 꼭 방문해 보세요.
이번 프로젝트 이전에도 여러 번 협업을 지속하신 걸로 아는데, 서로의 작업에서 어떤 영향을 받는지 궁금하네요.
린코 | 저는 하루카 씨와 함께 작업할 때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시너지를 증폭시키는 느낌을 받아요. 하루카 씨의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하루카 | 저는 린코 씨의 사진에서 멜로디가 들려요. 사진집을 제 집에 전시하듯 비치한 이유도 방 안에 음악이 울려 퍼지는 기분 때문이었거든요. 린코 씨의 사진을 보고 그 위에 음악을 입히는 일은 저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이미 선명한 멜로디가 들리니까요. 10년 정도 인연을 쌓아오면서 함께한 작업이 정말 많아요. 린코 씨의 전시에서 연주도 했었고, baobab 밴드와 협업한 앨범 커버, 뮤직비디오 영상 작업도 함께했어요.
baobab과 함께 발매한 음악과 뮤직비디오는 영화에서 본 초여름의 여행 장면을 떠올리게 해요.
하루카 | 아티스트 baobab이 살고 있는 오이타현의 '카테리나의 숲'이라는 숲에서 자주 파티를 열어요.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듯한 마을이죠. 가끔 광장에서 축제처럼 모닥불을 피워두고 린코 씨의 사진을 감상하며 라이브 공연을 하죠.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일본 여행에 오신다면 꼭 들러 보세요.
평소에 스트리밍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할 수 있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시는 것 같아요. 하루카 씨가 주로 작업하는 앰비언트 음악의 공감각적인 부분과도 잘 어우러지고요.
하루카 | 다른 영역의 창작자들과 협업할 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있어요. 사진작가나 요리사, 문인, 시각예술 작가처럼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대화하며 작업의 범위를 넓히고 새로운 상을 그려가는 거죠. 린코 씨를 비롯해 호시노 미치오(Michio Hoshino), 호소카와 아이(Hosokawa Ai), 미로코마 치코(Mirocoma Chiko), 시바타 모토유키(Sibata Motoyuki), 츠루타 마유(Tsurta Mayu), 이사오 마키노(Isao Makino) 모두 평소 존경하던 아티스트들인데 운이 좋게 그들과 함께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Aoimori」도 서점에서 재생하고 음반을 판매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관객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공간 안에 울리는 소리를 공유하는 기억의 잔향은 훨씬 더 오래 남을 것 같아요. 역시 음악은 입체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중요한 거겠죠.
하루카 | 맞아요. 츠타야 다이칸야마 점에서의 린코 씨와 함께한 <우리 사이에 같은 강이 흐른다>는 이번 프로젝트에 있어 가장 인상적인 시간이었어요. 제가 린코 씨의 팬으로 오랜 시간 소장했던 『Utatane』를 비롯해 여러 사진을 감상했죠. 같은 동네에 살던 시절 작곡한 트와일라잇 앨범 수록곡을 즉흥적으로 연주하면서요. 대체로 무대 위에서 토크를 할 기회가 자주 있진 않지만, 그날은 이번 프로젝트를 비롯해 린코 씨와 함께했던 그간의 시간을 톺아보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린코 | 저 역시 여운이 짙은 시간이었어요. 음악과 사진이 서로 반향(反響)을 일으켜 공간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잊지 못할 순간이었죠.
1년 동안 4개의 음반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셨는데, 이제 마지막 앨범 발매만을 앞두고 있어요. 독자분들께 릴리즈 예정인 앨범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하루카 | 지금까지 발매한 음원들은 매번 악기를 바꿔 연주했어요. 첫 번째는 신디사이저, 두 번째는 피아노, 세 번째는 일렉트로닉 피아노였죠. 마지막은 기타를 선택했어요. 어릴 적 가장 처음으로 잡았던 악기가 아버지의 낡은 통기타였거든요. 프로젝트의 단초를 제 안에 있는 푸른 숲의 소리에서 찾았으니, 매듭을 지을 악기로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스승이자 절친한 친구인 누자베스(Nujabes)씨가 선물로 준 기타와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오래된 기타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앨범을 준비하면서 역시나 풍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요. 이번 앨범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가장 고요한 숲으로 돌아가는 컨셉을 가지고 있는데요. 서점에서 만난 소중한 책과 이야기로부터 빛을 발견할 때, 이 음악과 함께 각자의 기억 속 푸른 숲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랍니다. 린코 씨와 함께 마지막 앨범으로 다시 인사드릴게요. (웃음)
"책과 악기가 시작되는 숲의 창문을 열자. 그곳에 음악이 흐르고 있다." -하루카 나카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