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 2
Yvon Lambert x Eve Lambert

디어 이봉 랑베르

2024.08.23

"정치적인 이유로 결정한 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가 사랑했던 예술계와는 다른 현실을 깨달았어요. 미술 시장의 가격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좀 더 인간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었어요."

- 이봉 랑베르


"아버지께서 지켜오신 갤러리의 원칙은 당대의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이었어요. 앞으로도 Yvon Lambert Paris는 그의 신념을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갤러리와 서점을 통해서 말이죠."

- 이브 랑베르


패션과 예술, 그리고 변화와 혁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프랑스 파리의 마레 지구. 예술과 책에 대한 애정을 가진 여행자라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이 있습니다. 바로 ‘Yvon Lambert Paris’인데요. 이 서점은 2017년 아버지 이봉 랑베르(Yvon Lambert)와 딸 이브 랑베르(Eve Lambert)가 함께 문을 연 복합예술공간이에요. 아트 북과 포스터, 에코백 등 매력적인 쇼핑 아이템들이 가득한 이곳에서는 뜻밖에도 현대 미술의 거장들과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죠. 수집가의 보물 창고 같기도 하고, 작은 도서관이나 아티스트 아뜰리에를 연상시키는 이 곳은 사실 단순히 힙한 서점으로만 볼 수는 없어요. 프랑스 현대미술계에서 파격적인 전시 기획과 독창적인 경영 철학으로 반세기 넘게 활동해 온 이봉 랑베르의 명성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는 자신의 대다수 소장품을 프랑스에 기증하고, 아비뇽의 코몽저택에 랑베르 콜렉션(Cour Caumont La collection Lambert en Avignon)을 설립했죠. 수백만 유로 이상의 가치를 지닌 그의 소장품은 프랑스 국민들의 유산이 되었고, 2014년 12월 파리 갤러리를 최종적으로 닫아요. 예술에 대한 이러한 헌신으로 이봉 랑베르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 공로 훈장을 받았답니다. 그러나 그의 여생은 해변가 별장에서 보내는 한가로운 시간이 아니었어요. 그는 여전히 ‘Yvon Lambert Paris’라는 이름으로 예술 서적과 프린트, 에디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며, 동시에 아티스트 북을 출간하는 데서 신진 작가들을 후원하고 있죠. 아버지의 물질적 유산이 아닌 정신적 자산을 이어받은 이브 랑베르와 함께, 그들이 말하는 "Yvon Lambert Paris”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from 게스트 에디터 진영선


디어 이봉 랑베르 Dear Yvon Lambert

1936년 프랑스 지중해, 벙스(Vence)에서 태어난 이봉 랑베르(Yvon Lamnert)는 문학과 시, 예술을 흠모하는 소년이었어요. 그는 고향에서 어머니의 재정적 지원으로 《모딜리아니에서 피카소까지》라는 드로잉 컬렉션을 열었고, 1966년 파리로 거처를 옮겨 파리 6구 레쇼대 거리에서 본격적인 갤러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죠. 이봉 랑베르는 특히 개념 미술에 매력을 느꼈고, 칼 안드레(Carl Andre), 솔 르윗(Sol LeWitt), 로버트 라이먼(Robert Ryman), 도널드 저드(Donald Judd)와 같은 미국의 급진적인 현대 예술가들을 파리에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아트 딜러이자 큐레이터로 급부상했어요. 사이 톰블리(Cy Twombly)의 전시를 위해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에게 글을 맡기고, 기성 및 신진 예술가들과 함께 아티스트 북을 발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죠. 흥미로운 점은 이봉 랑베르가 오늘날 지나치게 상업화된 갤러리들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추구했다는 점이에요. 2014년 말 그는 파리의 갤러리를 닫고, 딸 이브 랑베르와 함께 새로운 공간을 열며 출판인 겸 서점 주인으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죠. 역설적으로 2019년,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는 랑베르의 옛 갤러리 자리에 자신의 첫 번째 유럽 갤러리를 열었어요. 국제 미술 시장의 프랜차이즈가 가속화되는 현 시대에, 이봉 랑베르의 조용하고 수행적인 행보는 일상에서 예술이 가진 본질을 다시금 성찰하게 만들어요.


파리에서 첫 갤러리를 열고, 아트 딜러이자 컬렉터로 50년 이상을 프랑스 예술계에 몸담아 오셨는데요. 2014년 돌연 갤러리를 닫고 서점과 출판, 갤러리를 결합한 Yvon Lambert Paris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공간을 시작하셨어요.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이봉 Yvon | 저는 항상 서점에 대한 관심이 있었어요. 갤러리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전시장 입구에 별도의 서점을 두었으니까요. 1992년부터는 Bibliophilie라는 출판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이는 작가들과 함께 제작하는 아티스트 북에 해당해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제 딸 이브와 갤러리와 서점이 결합된 형태의 새로운 공간을 고민하게 되었고, 3년간 준비한 끝에 이 공간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아버지와 딸이 함께 운영하는 공간이라니 정말 매력적이에요. 이 공간을 함께 지속해 가는 과정에서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이봉 Yvon | 이전 갤러리는 1,000제곱미터가 넘는 꽤 넓은 공간이었고, 주로 전시에 중점을 두고 운영되었어요. 공간이 큰 만큼 운영에 대한 부담도 있었죠. 지금도 갤러리, 서점, 그리고 출판 부문으로 세분화되어 운영하고 있어요. 매달 다음 전시를 기획하고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있죠. 신진 작가들과 함께 새로운 전시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어요.


이브 씨, 프랑스 현대 미술에 최전선에서 활동하던 아버지 이봉 랑베르를 보며, 처음부터 갤러리를 이어받을 거라고 생각했나요? 어렸을 때부터 예술과 책에 관심이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어린 시절 당신에게 아버지의 갤러리는 어떤 곳이었나요?

이브 Eve |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 두 분 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현대 미술 갤러리를 운영하고 계셨어요. 예술적인 환경에서 자랐지만, 저는 다른 분야에서 커뮤니케이션 관련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20여 년 전부터 서점을 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실현하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예술과 출판 분야에 대한 관심은 계속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가면서 아버지와 함께 서점과 책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결국 규모는 작지만, 지금의 서점과 갤러리가 혼재된 새로운 형식의 ‘Yvon Lambert Paris’를 함께 운영하게 되었죠.


서점에 꽃이 있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에요. 더레퍼런스에도 종종 계절에 맞게 꽃으로 장식하고 그날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두죠. Yvon Lambert Paris에서 서점을 운영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드가 있나요?

이브 Eve | 지금도 서점 입구에 자주 수국과 장미 같은 꽃들이 놓여있어요. 우리는 그때그때 분위기에 따라 공간에 변화를 주곤 합니다. 훨씬 더 생동감이 느껴지거든요. 함께 일하는 플라워리스트도 있어서, 발렌타인데이 같은 특별한 날에는 그에 맞게 작업하기도 해요. 저는 이 작업이 예술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서점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특별한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으니까요.

이브 씨가 운영을 맡은 후로 서점의 비중이 더 커진 것 같아요. 도서 큐레이션에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가 무엇인가요? Yvon Lambert Paris를 어떤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나요?

이브 Eve | 우선, Yvon Lambert Paris에는 20년 넘게 저희와 함께해 온 훌륭한 북 큐레이터가 있어요. 책의 선정 과정에는 다양한 통로가 있죠. 여러 총판을 통해 출판사에서 신간의 목록을 정기적으로 제공받고 있고, 저희 성향을 잘 아는 출판사로부터 직접 연락이 오기도 해요. 이렇게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받은 제안 중에서 저희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함께 일했던 글작가 혹은 예술 평론가가 추천한 책을 선정하죠. 모든 분야의 책을 다양하게 소개하며, 새로 출간된 책이나 현재 상황을 반영하는 책,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전시 카탈로그 등을 선정하고 있어요. 또한, 이봉 랑베르가 20-30년 전부터 출간해 온 에디션 시리즈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봉 랑베르를 소개할 때, 프랑스인들의 예술 취향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갤러리스트라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오랜 시간 유럽과 미국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꾸준히 소개해 온 덕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Yvon Lambert Paris를 보면, 업데이트되는 레퍼런스 같다고 느껴집니다. 팀원들과 함께 공유하는 미션이 있나요? 아티스트 선정이나 작품 소장의 기준이 서로 다른지도 궁금해요.

이봉 Yvon | 제가 운영하던 시기에는 작품 판매를 위한 갤러리 활동에 집중했지만, 이제 이브가 운영하면서 갤러리, 서점, 그리고 아티스트 북 출판의 세 가지 활동이 유기적으로 함께 이루어지고 있어요. 아티스트를 선정하는 기준은 새로운 작가를 소개한다는 면에서 크게 다르진 않지만, 이브가 담당하면서 더 다양한 작가들을 소개하게 되었죠. 저희는 지난 15년 이상 함께 일해 온 스태프들과 한 팀을 이루고, 서로 자유롭게 소통하고 있습니다. 작가 선정에 대한 논의도 자유롭게 이루어지지만, 최종 결정은 예술적 방향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브와 제가 함께 내리고 있어요. 좋은 작가를 발굴하는 방법은 그 시대를 잘 반영하는 작가를 찾아내는 것이에요. 그들의 작업을 기다려주고 방문하며 지원하고 교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울도 예술 서점이 늘어나는 추세인데요. 2018년 문을 연 더레퍼런스 서울은 복합예술공간으로서 서점과 전시 공간을 같이 운영하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죠. 이런 상관관계에서 아티스트의 활동을 지지하고 선보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건 Yvon Lambert Paris와 무척 닮아 있는 것 같네요.

이브 Eve | 새로운 작가와 책을 소개하는 공간이 늘어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에요. 예술과 책을 함께 소개하는 공간은 언제나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러한 공간들을 여러 도시에서 만날 수 있다면 더욱 환상적일 거예요. Yvon Lambert Paris를 더레퍼런스 서울에 소개하고, 저희가 선정한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봉 랑베르 씨, 당신은 팝 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그리고 대지 미술 등 새로운 예술 운동을 파리에 소개한 선도적인 인물이죠. 당신이 수집한 현대 미술 컬렉션에는 사이 톰블리(Cy Twombly), 낸 골딘(Nan Goldin),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 등의 작품을 포함에 600점이 넘는데요. 대부분의 작품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이봉 Yvon | 저는 오랫동안 작품을 수집해 왔어요. 그 작품들은 20세기 화가들의 컬렉션을 보여주는 주요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당시 미술관에서도 관심을 보였죠. 20세기 화상으로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모아 기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감사하게도 제 딸 이브도 작품 기증에 동의했죠. 이는 예술로서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고자 하는 저희 목표와 방향이 일치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마지막으로 두 분이 Yvon Lambert Paris의 미래를 상상할 때 떠오르는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이브 Eve | 아버지께서 지켜오신 갤러리의 원칙은 당대의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이었어요. 앞으로도 Yvon Lambert Paris는 그의 신념을 계속 이어 나갈 것입니다. 갤러리와 서점을 통해서 말이죠. 예를 들어 젊은 작가가 출간한 책을 소개함으로써 그 작가의 작업을 알리는 것이죠. 이 서점에서는 찾으러 온 책이 아닌,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접하고 그것을 구입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이것이 이봉 랑베르의 DNA입니다. 또한 아티스트 북의 출판 프로젝트도 지속하고 있어요. 앞서 언급한 Bibliophilie라는 아티스트 북 컬렉션으로 최근  『Une Rêverie émanêe de mes loisirs』 시리즈를 통해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페노네(Guiseppe Penone)의 신간이 출간되었습니다. 또 2017년부터 시작된 새로운 출판물 Pli selon Pli도 있죠. 이는 이봉 랑베르의 기존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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