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2
MANGA

만화 장송의 프리렌을 읽어드립니다!

2024.09.13

“서로를 상상할 것,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할 것” 

-주슬아


안녕하세요, 만화 읽어주는 MD 주슬아입니다.


여러분은 ‘마왕을 무찌른 후 맞이한 평화로운 판타지 세계’를 어떻게 상상하시나요?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단순한 판타지 서사를 넘어, 시간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만화 『장송의 프리렌(葬送のフリーレン)』입니다. 이 작품은 마왕을 물리친 후의 평화를 배경으로, 주인공 엘프 프리렌이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여정을 그리는데요. 유한한 인간의 삶과는 다르게 무한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프리렌이 처음엔 인간에 관해 무심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받아들인다는 이야기에요. 도입부에서 프리렌은 “시간 낭비니까. 이것저것 가르쳐 봐야 금방 죽어버리잖아”라며 인간에게 무관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왜 그때 더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와 함께 천천히 인간의 삶 속으로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죠. 주인공의 이러한 변화는 제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답니다.


예술가이자 서점 MD로서, 저는 만화가 ‘현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펼치는 예술적 매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CC NOW에서는 ‘만화 읽어주는 MD 주슬아’로서 일상의 사물과 현실이 만화 세계에서 어떻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돕고 싶어요. 그럼, 함께 눈물샘을 자극할 여정을 떠날 준비 되셨나요?


from MD 슬아 


야마다 카네히토(山田鐘人)가 원작을 맡고, 아베 츠카사(阿部司)가 작화를 담당한 일본 만화『장송의 프리렌(葬送のフリーレン)』은 쇼가쿠칸(株式会社小学館)의 소년 만화 잡지 《주간 소년 선데이(週刊少年サンデー)》에서 2020년 4월 22·23 합병호부터 연재 중인 작품이에요. 한국의 학산문화사에서 정식 한국어 번역본을 발행하고 있어요. 이 만화는 판타지 만화의 클리셰인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 일행의 모험이 아니라, 마왕을 쓰러뜨린 ‘그 이후’ 삶을 다뤄요. 마왕군을 무찌르는 용사 일행의 모험이 끝난 지 50년이 된 해, 용사 힘멜은 마지막으로 동료들을 만난 후 인간의 수명을 다해요. 이 일로 엘프 프리렌은 힘멜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죠. 

함께 모험했던 동료들과 달리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가진 프리렌은 인간을 더 잘 알기 위해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저는 만화가 프리렌의 여정을 통해 '장송(葬送)'. 그러니까 전쟁 이후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이들을 기리며 애도하고, 그들의 기억을 간직하는 과정을 보여줄 것 같았어요. 작품 초반에는 이렇게 해석했는데, 후반부에 또 다른 반전이 있답니다! 『장송의 프리렌(葬送のフリーレン)』은 제14회 만화대상 (マンガ大賞), 제25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신생상(手塚治虫文化賞 新生賞), 제69회 쇼가쿠칸 만화상 (小学館漫画賞) 수상작이니, 꼭 읽어보길 추천드려요!


수집의 미학과 사변적 세계, 당신은 무엇을 수집하시나요? 

천 년이 넘는 수명을 가진 엘프 프리렌이 평소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마법 수집입니다! 프리렌은 세계 각지에서 전해지는 다양한 민간 마법을 모아요. '빨간 사과를 초록으로 바꾸는 마법,' '동상의 녹을 깨끗이 닦는 마법,' '달콤한 포도를 시큼하게 만드는 마법,' '빙수를 만드는 마법' 등, 겉보기엔 시시해 보이는 마법들이죠. 이런 프리렌의 모습을 본 제자 페른은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대마법사 프리렌이 '시간 낭비'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프리렌에게 마법은 힘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한 기억이기에 결코 이런 수집이 하찮은 일은 아니었죠.


말하자면, 프리렌에게 시시해 보이는 마법 수집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흩어진 시간과 기억을 모으는 과정이에요. 프리렌의 수집은 단순한 물리적 대상의 축적이 아니라, 문화적이고 인류학적인 시간의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의미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죠. 이런 프리렌의 행위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önflies Benjamin)이 언급한 ‘역사적 파편들의 수집가’를 떠올리게 해요. 벤야민의 사유에서 ‘수집가’는 역사의 잔재를 모아 새로운 내러티브를 창조하는 존재이며, 프리렌 또한 민간 마법과 인간의 감정을 모아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거든요. 이렇듯 이 만화는 다양한 시대의 경험과 기억을 프리렌의 세계로 흡수하며, 다층적인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거죠.


교차하는 비(非)인간과 인간의 시간

엘프 프리렌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가요. 그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우주적이고 순환적인 시간이죠. 이런 시간성은 10년간의 모험 후 프리렌이 “너희들과의 모험도 내 인생에서 100분의 1도 안 돼.”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극적으로 드러나요.

비(非)인간인 프리렌이 인간의 시간을 이해하는 과정은 인간 제자인 페른과의 관계를 통해 구체화돼요. 50년 후, 동료 아이젠이 페른과 함께 있는 프리렌을 보며 “그 100분의 1이 널 바꾸었으니 말이야.”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프리렌이 동료들과의 관계를 통해 서로 다른 시간성과 존재를 이해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죠. 이러한 장면들은 인간의 시간성을 비(非)인간의 시각에서 조명하는 탈인간 중심적 장치로, 만화는 인간 중심적 현실의 한계를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시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해요. 

현실에서 인간의 시간은 여타 다른 동물, 곤충, 식물 등의 시간과는 분명히 달라요. 제가 이런 시간의 차이를 가장 가깝게 느꼈던 건 반려견 ‘유리’, ‘체리’와의 관계를 통해서인데요. 이 이야기는 인간이 아닌 ‘반려(伴侶)OO’와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예요. 특히 그들을 무지개 다리 너머로 떠나보낸 사람이라면, 서로 다른 종의 시간을 강렬히 공감하게 되죠. 또한 우리는 ‘반려(伴侶)OO’를 통해 시간의 차이뿐만 아니라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알 수도 있어요. 오랜 시간 동안 그들과 비(非)언어적으로 소통하니까요. 이렇듯 비(非)인간과 인간의 시간 교차는 ‘관계 맺기’를 통해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죠.


회상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순환하기

이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누군가는 말하죠. “물건을 버려.” 또 다른 누군가는 말해요. “과거에서 벗어나!”라고. 

만화 『장송의 프리렌(葬送のフリーレン)』에서 프리렌은 과거에 동료들과 모험하던 장면을 자주 회상해요. 저는 의문이 들었죠. ‘왜 자꾸 그들과 함께했던 과거를 되새기는 걸까?’, ‘공회전하는 주인공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프리렌은 “아주 조금이라도 좋아.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 주면 돼.”라는 용사 힘멜의 말을 되새기며, 인간 제자 페른을 바라봐요. 그는 힘멜 일행과의 대화를 회상하며 현재 동료들과의 관계를 재구성하죠.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 자인에게는 “나는 ‘지금’을 이야기하고 있어.”라며 현재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사랑했던 아내를 잃고 수백 년간 마을을 지켜온 드워프 폴에게는 “폴 영감의 기억도 내가 미래로 데리고 가줄게.”라고 말해요.


이렇게 프리렌이 인식하는 시간에 대한 장면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시간을 상상하게 해요. “힘멜이라면 그랬을 테니까.”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프리렌의 회상은 과거의 잔해들을 바라보며 후회와 무력감을 말하지 않아요. 프리렌은 동료들과 함께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며 미래로 향하죠. 미래로 향하다니 너무 긍정적인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미래가 있긴 할까?’라며 ‘미래’를 항상 의심하고 살거든요. 저처럼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는 방법을 제안할게요.


혹시 이별을 겪고 있나요? 아니면 무한히 공회전하는 원에 갇히셨나요? 최근에 읽은 호추니엔(Ho Tzu Nyen)의『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에서 무한히 반복하는 시시포스(sisyphus)에 대한 단상이 떠올랐어요. 호추니엔은 축음기의 레코드 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요.


“축음기 레코드판 나선형 홈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여러 동심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소리로 그 차이를 들을 수 있다. 바늘이 중심을 향해 나선형으로 움직이면 화음을 재생하지만, 원 안에 갇혀있으면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출처: 김장언, 문지윤, 호추니엔 저자. (2024).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시간(타임)의 티: ##5B_sisyphus/repetition(174pp), 아트선재센터.


삶이 지리멸렬한 반복이라고 생각한다면 LP를 떠올려 보세요. 원으로 무한하게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아주 미세한 나선형의 홈이 만들어내는 화음이 조금씩 들릴 테니까요. 동심원이라는 생각을 아주 조금만 어긋나 보기로 할까요?

현재 저는 예술가로서의  6년간의 여정에서 잠시 한 텀을 쉬며 지난 활동을 반추하고 있어요. 전시가 끝나고 나면 늘 허무했던 감정의 응집은, 제 안에 마왕을 무찌르지 못해서일까요? 삶은 완결된 서사가 아니기 때문에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고 사유할 수 있는 작품을 추천해드렸어요. 마지막으로 로베르 필리우(Robert Filliou)의 말,“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을 떠올리며, 서로를 상상하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을 탐험하며, 자신만의 여정을 만들어가시길 바랄게요. “만약 인생을 걸고 찾던 술이 형편없이 맛없다면 어떻게 할 거야?” 프리렌의 질문이에요. 

여러분의 답은 무엇인가요?


힐링이 되셨길 바라며, 다음에는 고어&다크&폭력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참고도서

야마다 카네히토(글), 아베 츠카사(그림). (2020년 22·23호 ~ 연재 중). 장송의 프리렌. 쇼가쿠칸, 학산문화사

한나 아렌트 저자(글), 이성민(번역). (2020). 발터 벤야민: 1820-1940. 필로소픽

김장언, 문지윤, 호추니엔 저자. (2024).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아트선재센터

로지브라이도티 저자(글), 김은주(번역). (2020).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 꿈꾼문고

도나 해러웨이 저자(글) · 황희선(번역). (2019). 해러웨이 선언문: 인간과 동물과 사이보그에 관한 전복적 사유. 책세상

피터 밀러 저자(글), 박유선, 박지윤(번역). (2022). 리서치란 무엇인가?. 플레인앤버티컬

홍승혜 저자. (2006). 말나무 / 보이지 않는 기하학 / 로베르 필리우. 스펙터프레스


*이미지 출처 

『장송의 프리렌』 표지 사진 ©학산문화사 제공

주슬아 사진,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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