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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says, 패션독서도 독서입니다만?

2024.09.27

"책은 언제나 내 인생의 큰 사랑이었고, 독서는 너무 섹시하다."

- 미국의 MZ 모델이자 인플루언서 카이아 거버 


요즘 들어 책 읽는 사람이 유난히 더 눈에 띄거나 멋있게 느껴지지 않나요? 카페나 대중교통에서 책 읽는 사람 찾기는 쉽지 않지만,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선 예쁜 서점에서 책을 보는 모습, 책의 한 구절을 찍은 ‘감성 사진’이 넘쳐납니다. 성인의 독서량은 줄고 있다지만, 온라인 속 독서가들은 점점 더 많아지는 듯한 이 상황. 어쩌면 ‘책을 읽는 나(ME)’라는 이미지에 매료되어 패션독서(보여 주기식 독서)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혹은 새로운 독서 문화라고 해야 할까요? MZ세대 객원 에디터 4인이 모여, 새롭게 떠오르는 MZ세대의 독서 문화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았어요. 

from 객원 에디터 팀 레퍼런스클럽


“여름방학 때 재미있는 거 하고 싶은 사람은 따로 연락해!”

계원예대 사진예술과 마지막 수업에서 김 교수님이 하신 종강 멘트였어요. 무슨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궁금해지는 메시지였죠. 그래서 누가 연락했는지도 모른 채 네 명의 재학생이 7월 한여름에 교수님의 공간에 모이게 되었어요. 그때 자연스럽게 ‘MZ세대의 독서 취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죠. 요즘 숏츠나 릴스 같은 숏폼 영상이 유행하는 시대에, 과연 독서가 트렌드가 될 수 있을까? 개개인의 독서 스타일을 공유하다 보니, 텍스트힙부터 패션독서 같은 단어들이 언급되었어요. 이렇게 MZ세대의 독서 트렌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나눈 내용을 CC NOW 구독자 여러분께 솔직하게 나누려고 해요.

 

MZ Say, 패션독서도 독서입니다만?


독서의 트렌드화, 그리고 그 이면에 ‘패션독서’가 있다.

준 | 혹시 6월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이하 서국도)이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는 뉴스 봤어? 작년보다 방문객 수가 2만 명이나 늘었는데, 대부분이 2030이었대. 그래서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 독서실태조사 결과를 찾아봤는데, 성인 독서량은 오히려 매년 줄고 있다는 거야. 도대체 서국도는 어떻게 흥행한 걸까?


양 | 젊은 세대가 서국도를 문화 체험 공간으로 받아들인 게 아닐까? 요즘 텍스트가 다시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종이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한몫 한 것 같아. 디지털 카메라 대신 아날로그 감성의 필름 카메라가 유행하고, 전엔 '에스파'나 '엔하이픈' 처럼 판타지스러운 세계관을 가진 아이돌이 인기를 끌었지만, '뉴진스'처럼 이지리스닝 음악으로 공감을 이끄는 그룹이 더 주목받고 있잖아. 종이책도 비슷한 흐름으로 다시 주목받는 것 같아.


홍 | 맞아! 요즘 진짜 독서가 대세인 것 같아. MZ는 독서 중인 셀카만 찍어서 올리는 게 아니라, 중요한 문장에 줄 긋고 필사한 문장 옆에 자기 생각 적어 올리는 식으로 '텍스트힙'을 즐긴다고 하더라고. 책 읽는 것보다 그 경험 자체를 인증하는 데 의미를 두는 거지.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하루에 몇 번씩 보는 것 같은데, 너희도 그렇지 않아?


박 | 그런데 그런 독서 문화를 ‘과시’, ‘보여주기식 독서’라고 지적하는 시선도 있더라. 근데 MZ는 무언가를 SNS상에 증명하고 인증하는 게 자연스러운 세대 아닌가…. 텍스트힙을 ‘패션독서’라고도 하던데, 너희는 패션독서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


준 | 홍대, 일본 여행, 아이폰6 카메라 감성, Y2K, 빈티지 캠코더, 예쁜 접시에 과일 한 조각…. 대부분 MZ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의 주제나 유행하는 것들이 떠올라. 유행 대열에 책 사진이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는 독서를 하지 않지만, 책 사진을 올림으로써 지적인 이미지로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패션독서를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 셀럽들이 독서를 자랑하는 사진을 흉내내는 것도 같고? 


홍 | 약간 공감성 수치심이 느껴지는 대목인데….(웃음)


양 | 그럼 나도 패션독서인인데? 독서를 즐기지 않으면서 말로만 독서 하는 거 말야. 난 이 뜻에 반대일세. 그냥 책이나 독서를 패션 아이템 삼아서 자신의 이미지를 쇼업하는 정도 아닐까? 이건 그냥 MZ의 독서문화이자 SNS 활동의 일환이라고 봐야지!


우리는 어쩌다 독서에 빠지게 됐을까?

준ㅣ흐음, MZ의 독서문화이자 SNS활동의 일환이라…. 디지털 컨텐츠가 일상인 MZ들은 종이책을 언제 처음 읽었을지 궁금해지는데? 다들 독서는 어떻게 시작했어?


박 | 대학입시가 끝나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갓생 브이로그’나 ‘미라클 모닝 도전기’로 도배된 적이 있었어. 그런 브이로그엔 독서하는 장면이 필수더라고. 나만의 루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가 시간에 SNS 대신 책을 읽는구나 생각하게 되었지. 그래서인지 ‘갓생’(성실한 인생)하면 자연스럽게 독서가 떠올라. 갓생러가 되고 싶은 마음에 독서를 시작하게 됐어.


홍 | 난 어릴 때부터 조용하게 앉아 책 읽는 친구들이 멋져 보였거든. 그 침착한 바이브가 항상 부러웠달까? 예술서점에서 인턴쉽을 하면서 다독가 직장 동료 선배님들이 멋져 보이고, 요즘 ‘다시 열심히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 중! 근데 책을 열심히 읽으면 나도 자연스럽게 그 바이브가 생길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더라고.


준ㅣ생각해 보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 과학 선생님에게 영향을 받았어. 문제가 있을 때마다 말 몇 문장만으로 상황을 정리하시는 그의 카리스마에 매료되었지. 선생님의 그 멋진 언변술은 독서로부터 다져졌다고 생각해. 소문난 애서가셨거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추천해 주시면서 훈계할 때도 항상 과학과 연관된 내용으로 교훈을 주셨던 게 생각나네.


양 | 다들 어릴 때 영향을 받았네? 나는 비교적 최근에 민음사 유튜브를 보고 독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 출판사 직원 분들은 미사여구 없이도 명료하게 잘 이야기하시더라.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어. 그 후로 민음사 유튜브에서 추천하는 책이면 냅다 구매해서 읽은 게 내 독서의 시작이야.


준ㅣ디지털 컨텐츠에서 아날로그 컨텐츠로 관심이 확장되기도 하는구나. 언론에서 말하는 MZ에 대한 편견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 신기해. 공통적으로 ‘책 읽는 사람’ 에 대한 지적인 동경에서부터 출발한 것 같은데, 그래서 자연스레 독서를 멋있다고 생각하고 SNS에도 독서하는 사진을 올리는 걸까?


양 | 뭐, 그럴수도? 나는 몇 년 전에만 해도 데이트 코스 중간에 꼭 독립 서점을 넣었어. 대형 서점과 달리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굿즈 보는 재미도 있잖아. 책을 읽거나 사는 것보단 ‘독립서점에서 책을 향유하는 사람’이라는 내 이미지에 취해서(웃음). 물론 사진은 꼭 SNS에 올려야 하고. 홍은 지금 더레퍼런스에서 일하고 있잖아. 거기도 사진만 찍고 가는 사람이나 우리가 정의 내린 '패션독서인'들이 많이 오는 편이야?


홍 | 물론, 사진 찍으러 많이들 오시지! 이렇게라도 서점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게 반갑고 기쁘지만, 가끔은 ‘하나라도 구매 해주셨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어. 책이 지속적으로 판매되어야 북 큐레이션에도 신경 쓸 수 있고, 공간에 활력도 더 생기니까. 근데 확실히 SNS에서 소비되는 서점과 실제 서점 사이에는 간극이 있는 것 같아.


MZ가 서점에게 원하는 것들

양 | 홍의 시선도 공감은 되네. 근데 요즘 독립서점은 책을 사는 곳보다 일종의 체험 공간으로 느껴 지기도 해. 조용한 분위기에서 ‘쉼’을 느낀다거나, 음악회 혹은 아티스트 토크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처럼.


박 | 정적인 공간을 원하면서도, 도파민 터지는 자극적인 숏폼에 익숙하다보니 책 같은 롱폼은 자연스럽게 부담스러워지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아. 뭐랄까…. 펼쳐보기도 전에 지루한 느낌?


준 | 내 생각엔 책에 대한 설명, 책을 읽거나 구매할 만한 당위성을 제공해 줄 무언가는 필요한 것 같아. 만약 대중에겐 조금 어려운 아트북을 파는 독립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책에 대한 코멘트가 있다면 어떤 책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읽어볼 만 하다’ 고 느낄 것 같거든. 예를 들어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는 큐레이션 된 책에 코멘트가 달려있었는데, 책을 다 읽어보지 않아도 이 책이 나에게 주는 가치 정도는 따져볼 수 있어서 좋았어. 코멘트를 읽고 책을 읽으면 더 쉽게 이해되기도 하고.


그리고 오프라인 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양한 경험 제공이 아닐까? 카페에 가는 이유가 커피가 맛있어서 만은 아닌 것처럼, 서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예를 들어, 난 한남동의 아트북 서점 ‘포스트 포에틱스’에 방문할 때마다 그곳의 음악 취향에 반하고 돌아와. 보통 편한 분위기를 만들려면 스탠다드 재즈를 틀텐데, 여기선 처음 듣는 앰비언트 음악이 나와서 갈 때마다 귀가 행복하달까? 북촌의 ‘이라선’은 서촌에 있을 때보다 서가도 넓어지고, 큰 통창 앞 편한 의자에 앉아서 책을 볼 수 있게 리뉴얼 됐더라. 좁지 않은 공간이 일단 ‘반드시 구매해야한다’는 부담을 덜어준다고 생각해.


양 | 나는 독립서점이나 출판사가 더 적극적으로 유튜브나 SNS를 활용해야 한다고 봐. 민음사 유튜브 콘텐츠로 책을 접한 사람들이 꽤 되지 않을까? 금융 플랫폼 토스가 운영하는 유투브 채널 ‘머니그라피’는 음악 산업 인터뷰 ‘머니코드’, 디깅(Digging) 소비를 다루는 ‘B주류경제학’ 등의 콘텐츠를 전개하면서 팬덤과 세계관을 만들고 있더라고. 음악 플랫폼 벅스의 유튜브 채널 ‘essential’도 비슷한 사례고. 두 채널 다 썸네일이나 영상 안에 브랜드를 억지로 드러내지 않지만, 메인 아이템이나 서비스를 콘텐츠로 만들어 대중에게 브랜드 미션을 꾸준히 전달하는 거지. 독립서점이나 출판사 역시 물성을 띄는 책, 영상 콘텐츠를 구분짓기 보다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책을 가지고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아.


결국, 패션독서도 독서입니다만?

박ㅣ 최근 뉴스에서 제도적으로 독서 문화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이런 흐름도 일시적 유행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텍스트힙 열풍이 실질적인 독서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지. 이 의견, 다들 어떻게 생각해?


준ㅣ우리 모두 결국은 책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자신만의 독서 방법을 찾지 않았나? 그저 유행일지라도 한 번쯤 독서에 관심을 갖고 책을 진중하게 골라 본 경험이 있다면, 살아가는 데 적지 않은 울림과 변화를 줄 거라고 생각해. 그게 책의 힘이고. 난 이번 유행으로 독서문화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어.


양ㅣ어쩌면 패션독서는 독서에 익숙치 않았던 사람들의 서투른 시작이고, 그들이야말로 사실은 찐 잠재적 애독자들 아닐까? 지금의 패션독서라는 말에는 약간 부정적이고 조롱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은데, 잠재적 독서가 라는 뜻으로 앞으로 포텐셜 리더(Potential Reader)로 부르는 건 어때?


홍ㅣ유행을 따라 시작했더라도 점점 각자의 독서 가치관을 쌓아나간다면, 앞으로 독서 트렌드에 어떤 변화가 있든 간에 결국 자신만의 본질을 찾아갈 거야. MZ가 바라보는 20대의 리얼 독서 문화…. 재밌는데? 그럼 오늘 대담은 여기서 끄-읏!


레퍼런스클럽을 소개합니다!

준(신준재)ㅣ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하지만 그런 페르소나 분석을 좋아한다. 심리학보단 뇌과학을 믿는 편.

양(양유라)ㅣ패션, 음악, 마케팅, 사진 등 문어발식 취향의 소유자. 트렌드 있는 곳에 그녀가 있다.

홍(홍지현)ㅣ더레퍼런스의 실습생으로 시작해 파트타이머로 눌러 앉은 계란 후라이형 알바생.

박(박윤주)ㅣ확고한 취향을 가진 그녀. 한 번 좋아하기 시작하면 ‘@@오타쿠’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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