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1
DRAWING WITH THE LIGHT

모든 것은 빛난다, DRAWING WITH THE LIGHT

2024.07.22

인간의 어두운 마음에 빛을 비추는 것, 그것이 예술가의 할 일이다. 

- 로베르트 슈만(R. Schumann)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환하게 빛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누구보다 예민한 촉수를 지닌 이들의 민낯은 밤을 건너는 듯 느껴질 때가 있는데요. 어쩌면 운명처럼 자신의 여정을 걷는 예술가들은 누군가가 반드시 조명을 비추고 세상에 알려야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죠. 올 여름, 오래 품은 의지와 연이은 우연의 순간들이 빛으로 엮이고 이어져 하나의 전시가 마련되었습니다. 


빛을 하나의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포착하는 유지 하마다(Yuji Hamada), 캔버스 위 색면으로  빛의 레이어를 경험하게 하는 레이나 미카메(Reina Mikame), 빛을 통해 침묵으로 스며드는 설치를 제시하는 최성임(Sungim Choi).

7월 26일 부터 8월 18일까지 더레퍼런스에서 열리는 한일국제교류전시 ⟪Drawing with the Light⟫ 창작하는 사람의 의식에 닿은 빛에 관하여 들여다 봅니다.  


from 강은미 독립 큐레이터     


모든 것은 빛난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로 시작하는 우주 창조의 신비는 입자와 파동으로 수렴하는 현대 물리학의 지식을 빌어 이해하려해도 여전히 신비의 영역이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며 극복하려는 것도 빛의 속도를 뛰어넘어 공간을 한계를 부수는 것이다. 언제나 빛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인간의 지력으로 파악하고 재창조 하려고 했던 대상도 빛의 세계였다. 우리의 하루는 빛이 한가득 차오르고 사라지는 반복 속에 나아간다. 새벽 어스름과 함께 대지를 밝히는 태양빛과 함께 일과를 시작하며 모든 생명은 그 에너지를 저장하고 운용하여 생명을 틔워내고  존재를 성장시키며 피어냈다.  


우리는 삶에서 순간 순간 다양한 반짝임을 마주한다. 아침햇살이 강에 떨어지며 부서지는 윤슬, 구름 사이를 비집고 새어나오는 빛, 붉은 석양과 달빛, 그리고 현대인의 밤을 채우는 도시의 잠들지 않는 불빛들. 또한 지금의 디지털 시대는 살아가는 매순간 시선을 앗아가는 반짝임에 둘러싸여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빛에 기대하고 빛으로 부터 비추어보는 것은 무엇일까. 온전한 빛에 오롯한 나를 그대로 던져보는 것, 내가 곧 빛이 되는 찬란한 경험 혹은 은은한 빛에 침잠하며 사색하며 참나를 알아가는 과정, 빛나는 순간들이  간직하고 언젠가 꺼내어 보는  찬란한 기억들. . .


창작을 하는 태도에 깃든 빛은 어떠한 질감과 속성을 그리고 온도를 가지게 될까. 여기에 각기 다른 매체를 통해 자신의 언어로 빛을 소환한 세 명의 작가가 있다. 빛을 다룬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물질에 시간을 그리고 자신의 의식을 부여하는 태도다. 사진,회화, 설치 작업을 통해 공간에 펼쳐지는 물리적 세계는 작가의 내적 의식과 외부의 빛을 매개하며 탄생한 하나의 단면이다. 창조의 원천으로서 빛을 향하고 존재와의 간극을 포착하는 의식을 비추는 순간들에 다가서려는 관점과 태도를 이번 전시를 통해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그 탄생부터 얻은 이름, 바로 태양이 그린 그림(Heliography)이었다. 지지체와 감광물질이 빛을 만나 탄생하는 사진적 우주는 인간의 손을 벗어난 순간의 우연이 그려내는 세계다. 작가의 손은 오직 빛과 지지체가 만나는 조건에 개입하는 것이다. 유지 하마다의 <Light there> 작업은 자신의 앞에 놓인 모든 빛을 수집하는 제스처를 보인다. 오직 자외선에만 반응하는 알루미늄 플레이트를 필름 대신 사용하여 황혼 무렵의 도쿄의 풍경을 담아냈다. 작가는 시간이 속절 없이 흐르는 것이 자연의 빛과 같다고 생각한다. 강물이 흘러가지만 절대 같은 곳에 머무르지 않는 것처럼, 빛 또한 내 앞에 쏟아지지만 단 한번의 사건이라고 하며 특정 시간의 구간에 쏟아지는 빛을 그대로 받아낸다. 사람은 감지하지 못하는 자외선을 응집하여 순간을 물질화하려는 시도는 일상의 속절 없음을 순간의 빛을 오롯이 움켜쥐면서 부질없는 지금의 의미를 구제하려는 제스처가 아닐까. 


빛은 투명하고 반짝임으로 존재하지만 구체적인 물질적인 경험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의식에 직접 떨어지는 강력한 힘으로, 많은 과학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는 항상 빛을 다른 차원으로 경험하게 하려는 다양한 도전이 있어왔다. 하지만, 시각예술의 가장 고전적인 매체인 회화, 말 그대로 세계를 환상으로 담아냈던 평면을 통해 빛의 물질성을 경험하게 하는 작가가 있다. 레이나 미카메는 의식의 심연이 감지한 빛을 채집하여 색을 입혀 캔버스에 응축해낸다. 작가의 의식이 지각한 물질이 경험이 빛나며 하나의 화면으로 떠오른다. 그의 수직수평으로 산란하는 듯한 빛나는 색면으로 쌓아올려진 캔버스의 붓터치는 시선이 머무는 모든 지점을 잡아두고 동시에 전혀 다른 사색에 빠져들게하며 오히려 그 파동에 함께 진동하게 만들며 빛을 내재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빛과 어둠의 경계는 어디인가, 빛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가장자리는 과연 어디쯤일까, 삶과 죽음이 갈리는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인간은 끊임없이 질문하며 버텨내는 존재다. 이런 존재의 극기 상황에서 찾아드는 예민한 감각의 촉수를 전시공간을 세로로 질러버린 최성임의 <발끝>이 있다. 수직으로 떨어지며 바닥면에 도착하는 금속추는 지각의 돌기를 예민하게 만들며 의식의 바닥으로 끌어낸다. 창작 작업을 하는 모든 시간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자기 자리를 만들어내는 이 날선 지각을 보는 듯 하다. 이 감각은 다시 <황금 이불>이 깔린 방을 가로 막은 벽아래로 스며나오는 황금빛이 발 아래를 포근하게 감싸올린다.


인간이 만든 재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에 던져진 우리는 어떻게든 존재의 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손이 닿을법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출발한다. 우리 일상에 던져진 사물을 바라보며 작은 반짝임 하나로 오늘을 뛰어넘는 태도가 필요하다. 유지 하마다의 <Primal Mountain>의 알루미늄 호일로 만든 스위스 설산의 풍경은 최성임의 <황금 이불>에서 수많은 밤을 건너 직조된 식빵 끈의 텍스처와 서로 반짝이며 조응한다. 일상의 사물을 변용 하여 미적재료로 선택하고 자신의 시선으로 재맥락화 시켜 하나의 공감각적 체험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은 오직 예술언어에 허락 된 미학적 가능성을 열어보인다.


또한, 유지 하마다의 알루미늄 플레이트에서 탄생한 모노톤의 도시의 풍경과 레이나 미카메의 캔버스에 붓터치로 새겨진 색면은 시각적인 경험을 창조하는 작가만이 포착해낼 수 있는 틈이며 이식된 빛으로 미적 유희를 선사한다. 매몰된 일상에서는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단면들을 시간의 단절을 통해 고요하게 정박해내며 의미를 탄생시키고 있다. 레이나 미카메가 자신만의 감각으로 쌓아낸 캔버스는 최성임의 설치 작업에서 배어나오는 황금색 빛과 가장자리에 솟아오르는 황금 와이어 끈의 리듬은 고요한 공간 속을 유영하는 관객에게 명상의 시간을 열어낼 것이다.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 그리고 다가오는 것들, 내 주변에 떨어진 수많은 반짝임들을 포착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예술이라는 대답없는 세계에 매일 같이 자신을 비추는 예술가들의 충동이다. 그런 반복 속에 구성 된 각자의 심연에서 건져올린 응답은 또다시 우리를 감응하게 하며 함께 잠시나마 빛나게 해줄 것이다. 


To send light into the darkness of men’s hearts- such is the duty of the artist. 

- R. Schumann


전시 안내

Drawing with the Light 


참여작가  유지 하마다, 레이나 미카메, 최성임 

기간  2024.7.26(금) - 2024.8.18(일)

장소 더레퍼런스(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24길 44)

기획  김정은 강유미

도움  장준호, 곽기쁨, YKG Gallery


이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시공간지원 사업일환으로 더레퍼런스에서 주관∙주최하였다. 

CC NOW 뉴스레터 구독하기